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대 그리스 (문단 편집) ==== [[헬레니즘]] 철학 ==== 그리스 철학의 3대장이라 할만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인 [[헬레니즘 시대]]에도 그리스 철학은 명맥을 이어나가며 꾸준히 발전했다. 이 시기의 가장 유명한 학파로는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회의주의]], [[키니코스 학파]], [[신플라톤주의]] 등이 있다. [[스토아 학파]]는 [[금욕주의]]라는 독특한 특성으로 상당히 유명하다. [[로고스]]로 대표되는 이성주의와 합리주의를 가장 중시했으며 욕망이 이성을 가린다고 보고 금욕적인 삶을 추구했다. 창시자는 [[키티온의 제논|제논]]이었으며 주요 스토아 학파 철학자로는 [[에픽테토스]],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 [[오현제]] 중 하나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이 있다. 실로 고대 그리스를 넘어 [[로마 제국]]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학파였던 것이다. 이후 [[바뤼흐 스피노자]]의 [[합리주의]] 철학에 영향을 끼쳤으며 현대까지도 전해져내려오고 있는 역사가 오래된 학파다. 이와 완전히 대척점에 선 학파가 [[에피쿠로스]]의 [[에피쿠로스 학파]]였다. 이들은 현생의 쾌락을 가장 중시했으며 개인의 행복이 삶의 최종 목표라고 믿었다. 이 '쾌락'의 개념을 육체적, 일시적 개념의 1차원적 쾌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에피쿠로스 학파에서 추구하던 쾌락은 그딴 단순한 쾌락이 아니었다. 에피쿠로스 학파가 말하는 쾌락은 '고통의 부재'를 의미하고,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것이 곧 쾌락의 상태라고 보았다. [[에피쿠로스]]는 오히려 육체적인 쾌락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하기에 이를 멀리해야 한다고 보았고 최소한의 쾌락만을 충족하면 된다고 여겼다. 현대인들이 에피쿠로스 학파가 무조건적으로 쾌락을 쫓는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의 개념인 것이다. 이런 순간적인 쾌락을 쫓던 학파는 오히려 쾌락을 인간 행위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쾌락주의의 한 분파인 [[키레네 학파]]가 더 유사하다. 견유학파로도 알려진 [[키니코스 학파]] 역시 잘 알려져 있다. 모든 것을 냉소적으로 바라봤고 현실의 명예와 부를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봤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안티스테네스가 처음으로 창시했고, 이 키니코스 학파의 이념을 극대화시킨 인물이 유명한 '''[[디오게네스]]'''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소원을 묻자 햇빛을 쬘 수 있게 앞에서 비켜달라고 요구한 일화가 유명한 인물인데, 디오게네스는 그 정도로 모든 것을 덧없는 걸로 여겼다. 하지만 아예 삶을 포기하거나 무기력하게 살았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다. 키니코스 학파는 소크라테스의 영향으로 덕(德)을 중시하여 신체적·정신적 단련을 중시하였고, 고대 헬레니즘 세계를 여행하며 사상을 전파하기도 했다. 이들은 그리스인과 이방인을 구분하지 않고 자신을 세계 시민(cosmopolitan)으로 소개하곤 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는 [[도가]]의 사상과도 유사한 면이 있었다. 플라톤의 사상을 계승해 새롭게 체계화한 학문이 바로 [[신플라톤주의]]다. 후대에 전해진 플라톤의 저작은 약간의 편지를 제외하곤 모두 대화편으로 되어있어 플라톤 본인의 사상을 정리하기가 극도로 난해한데,[* 오히려 강의노트가 남은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플라톤이 더 어렵다. 대화편은 장르 특성상, (설령 작중 소크라테스라 하더라도) 등장인물들의 발언이 플라톤의 생각을 대변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자가 플라톤의 생각을 아예 반영하지 않는다'는 보장조차 없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건 강의노트이기에 일단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라고 안심하고 읽을 수 있다. 게다가 대화편은 서로간에 내용이 긴장관계를 이루는데, 현대의 플라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플라톤이 학설을 수정한 것인지', '수정하지 않은 것인지', ''''애당초 단일한 플라톤 사상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플라톤은 단지 지혜를 탐구하는 태도만을 가르친 것인지'''' 합의가 안되었다.] 이걸 서기 3세기 [[플로티누스]]를 시작으로 후대인들이 다시 엮고 묶어 정리한 게 신플라톤주의라고 생각하면 된다. 현상으로서의 세계는 실체로서의 세계인 [[아니마 문디]]의 환영상일 뿐이라는 생각, 모든 인과관계를 결정하는 '단일한 원리'로서의 일자에 대한 개념이 신플라톤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적인 관점이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인간의 완전함과 행복은 내세에서의 구원이 아니라 현세에서의 깨달음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 철학적 숙고와 통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후 [[아우구스티누스]]를 포함해 초기 기독교의 [[영지주의]]와 이슬람의 [[무타질라 학파]]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주요 철학자는 [[플로티누스]]와 여성 철학자 [[히파티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